반하 아가씨:
편지를 확인했을 때 기뻐하는 당신의 얼굴이 떠오르네. (선주 사람들은 편지의 머리말에 이런 글을 쓰는 게 예의라더군)
구름나루를 떠난 뒤로 너에게 여러 번 연락을 보냈지만 답장이 없더라. 그래서 네가 저번에 보냈던 의사한테 부탁하기로 했어. 그 두 사람 덕분에 이 편지를 너에게 보낼 수 있게 되었지. 앞으로 우리의 행보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게 될 거야. 그래서 이렇게 책임감 없이 떠나고 싶지 않아.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너한테 말해줘야겠어.
솔직히 말하면 그 두 의사가 제때에 날 찾아오지 않았다면 난 네가 날 버렸다고 생각했을 거야.
뭐 그렇다고 널 용서한 건 아니야. 의사한테 들었는데 날 찾을 생각도 없고 내가 원하는 리스트도 줄 생각이 없다던데? 그냥 내가 불쌍해서 내 병을 치료해 줄 의사를 보낸 거라고 하더라. 넌 내가 원하는 게 정말 「치료」라고 생각해? 내가 원하는 건 「평등한 존중」이야. 넌 네가 단명종이라고 항상 무시해 왔지. 네 앞에 서면 난 길가의 쥐가 된 것 같은 느낌이야.
그 열악한 컨테이너에서 얼마나 오랫 동안 숨어있었는지, 약왕의 비전이 얼마나 흉악한지, 시왕사의 판관들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들인지 넌 모를 거야… 넌 단정사(丹鼎司)에 숨어있으니까. 결국 너한테 중요한 건 너 자신의 안위뿐이었어. 나 같은 건 죽든 살든 관심도 없었던 거지.
내가 널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데! 날 사랑한다고 했잖아. 하지만 지금 난 네 사랑을 느낄 수 없어.
그래서 제대로 말하려고. 난 널 단 한 순간도 좋아한 적 없어. 네가 불로장생약을 얻을 방법이 있다고 해서 너한테 접근한 거야. 네가 약왕의 비전이 정말 존재한다고 해서 그 조직에 가입하라고 말한 거야. 그리고 네가 약왕의 비전 리스트를 얻을 수 있다고 해서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구름나루에서 널 기다렸던 거야. 그러니까 잘난 척하지 마. 네 연민따위 필요 없으니까.
아,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난 사진궁(司辰宮)의 부름 대로 돌아가기로 했어. 이 편지를 받았을 때 난 이미 은신처를 떠났을 거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