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um 붕괴: 스타레일

찢어진 일기

*언뜻 보기에 이 세 페이지는 서로 연관이 없는 것 같지만, 모두 어떤 사람의 일기에서 뜯어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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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3일 화요일
며칠 동안 나는 패거리와 함께 이 지하를 돌아다녔다.
매일 밤 자기 전에 생각해 보았지만, 방랑자의 생활은 전혀 녹록치 않은 것 같다. 예전에는 마을을 돌아다니는 방랑자들을 못마땅하게 여겼는데, 설마 대가 그 꼴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후, 정말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로구나.
빌어먹을 열계 같으니. 그것만 아니었으면 이렇게 고향을 떠나야 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오늘 밤은 지붕이 있는 곳에서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을 떠나니까 추워서 견딜 수가 없다.

11월 24일 수요일
우리는 볼더 타운의 광산구역을 찾아갔다. 이곳의 십장들은 처음에는 우리를 내쫓으려 했지만, 결국 외진 갱도에서 머물 수 있게 해줬다.
우리가 오기 전에도 이곳에는 누군가가 살고 있었던 것 같다. 물어보니 그들 역시 방랑자 무리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기분을 뭐라고 했더라… 동병상련?
그들은 이곳을 「피난소」라고 불렀다. 광산에서 사고가 났을 때 몸을 피하는 장소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 갱도가 폐쇄되면서 방랑자들의 거처로 변했던 것으로 보인다.
남의 땅에서 사는 것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지붕과 바람을 막아줄 벽이 있으면 그만이니까.

11월 26일 금요일
저들과 함께 지내기 시작한 지 벌써 이틀째다. 배가 고파서 몸에 힘이 없었기 때문에 채굴대와 함께 일하러 가는 것도 귀찮게 느껴졌다. 게다가 저들 중 일부는 우리를 방랑자라고 깔보기도 했다.
하지만 난 양심에 찔리는 일 따위는 해본 적이 없다. 있다면 그저 쓰레기를 주워 먹은 것뿐인데, 왜 나를 저렇게 대하는 걸까?
하지만 저들 중에도 좋은 사람은 있다. 바로 스티브라는 사람이다. 항상 너덜너덜한 파란 셔츠를 입고 다니는데, 이 사람만은 이야기가 통하는 편이다. 듣자 하니 어제 채굴대가 뭔가 큰 걸 발견했는데, 웬 불한당들이 몰려와서는 그곳을 점거하려고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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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0일 화요일
아무리 봐도 쓰레기를 줍는 일이 남는 게 없는 것 같아서 채굴대에서 허드렛일을 좀 돕고 있다. 나름 손재주가 있는 편이라서 가끔씩 기계를 고쳐주기도 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까 채굴대 사람들과 거의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됐다.
그 스티브라는 자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날 많이 도와줬고, 먹을 것이 남으면 챙겨줬다.
아무래도 앞으로 계속 채굴대 일을 도와주게 될 것 같다. 어차피 밥은 먹고 살아야 하니 쓰레기를 줍는 것보다는 이쪽이 훨씬 낫지 싶다.
얼마 전에는 나도 그 큰 광맥을 보러 갔었다. 얼마나 크길래 하고 봤더니 확실히 크긴 컸다. 탐내는 놈들이 생길 만하다.

12월 2일 목요일
스티브가 내게 채굴대에 합류해서 기계 정비를 맡아주지 않겠냐고 물었다. 나는 좋다고 했다. 밥만 먹을 수 있다면 뭐든 상관없었으니까. 이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나를 잘 챙겨준다.
나중에 돈을 좀 모으고 나면 그를 초대해 식사를 대접할 생각이다. 볼더 타운의 괴테 호텔이라는 곳의 셰프가 그렇게 실력이 좋다고 하던데.
오늘은 어떤 광부가 몰래 숨겨뒀던 돈을 도둑맞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얼마 전에 나타난 그 불한당 놈들 짓인 것 같은데, 정말 속상하다. 그놈들 때문에 채굴대 사람들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더 나빠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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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5일 일요일
좋아! 오늘 일어나자마자 채굴대 사람들이 그 불한당 놈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피난소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와일드 파이어」 사람이 와서 중재하려고 했는데, 정작 제대로 말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고, 결국은 로봇 무리가 와서 두 패거리를 갈라놓았다고 한다.
누구 다친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스티브 형한테 밥을 사줘야 하니까 상황이 진정되면 형을 찾아가 봐야겠다.

12월 10일 금요일
이틀 동안 스티브 형을 찾아다녔는데 도통 보이지가 않았다. 채굴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모른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대체 형은 어디로 가버린 거지? 그날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로봇은 인간을 보호해야 하는 존재라던데.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12월 13일 월요일
스티브 형이 그날 근무하지 않고 외출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바깥으로 나갔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결국 아무런 소득도 없이 돌아와야만 했다. 겨우 새 친구를 사귀게 되었는데 이렇게 사라져 버리다니.
이제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다. 다 정리하고 내일 떠날 생각이다.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스티브 형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