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um 붕괴: 스타레일

연구원 에이쿠라의 일기

앰버력 2157년 39월 51일 거문고자리 유성우

하, 얘기하자니 웃기네. 우주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헤르타」 연구원이 무중력 상태에서 낯선 감각과 공포를 느끼다니. 5시간이 지났고, 가이드 로프가 배를 조이는 감각은 여전하다. 희귀한 2상 플루오린화 리튬으로 만들어진 긴 섬유질 로프라는 걸 알지만, 가장 날카로운 칼로도 훼손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속박을 벗어던지고 우주의 심연으로 날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우주는 넓고 갈 곳은 있기 마련인데, 왜 우주정거장에서 굴욕을 견뎌야 할까? 어둠 속을 표류하다 운 좋게 천혜성의 벽에 가로막혀서, 유목민의 시끄러운 광차(鑛車)를 타고 별바다를 누빌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로 은하계의 균열 사이에 자리한 고대 괴수의 심연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마치 하루살이가 고래 입속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그 내부는 습하고 더울까, 아니면 「무명객」이 전한 말대로 부드러운 밤하늘 별빛 같을까? 만약 후자라면 여기서 호구처럼 지내는 것보다 죽기 전에 아름답고 신기한 풍경을 보는 게 훨씬 낫다. 어차피 거기서 죽으나 여기서 죽으나, 아무도 신경 안 쓰는 건 똑같으니까.

「삐빅삐——삐——평형 확인 완료」

균형실 안, 붉은빛이 반짝였다. 소음이 보호 펜스의 전위 균형 검사가 끝났다고 알렸다. 심연의 입에 죽는 건 망언에 불과했다. 지금 조종대 위에 엎드려서 정규 기록이나 작성하며 그럴듯한 방법으로 글을 써도 상관없다. 난 직접 조사해서 얻은 필드 자료를 낭비하지 말고, 서둘러 반중력 보호 펜스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써서 지난 연구의 실책을 커버해 평점을 높여야 했을지도 모른다. 또는 수리실로 가서 온천옹에게 물이나 받아 마시며 긴장을 풀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연구 보고서가 쓰기 싫었다고 시원하게 인정할 수 있었다.

창 너머로 반중력 보호 펜스가 우주의 희미한 남보랏빛 빛을 난반사하는 광경이 보인다. 이런 광경은 이미 8 앰버기원 동안 존재했다…. 시간의 영향을 받아들이는 이 능력은 「컴퍼니」 이외의 누군가가 했다고 상상할 수 없다. 이걸 처음 세운 건 헤르타 님에게 잘보이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위험을 예견해서였을까? 둘 다일 수도 있다. 얼마 안 가 그 괴물들이 왔다. 그들은 점점 잦은 빈도로 우주정거장에 충격을 가했고, 파견한 변종도 갈수록 무시무시했다. 지난 세기 동안 그들은 연구실 선실에 숨어서, 귀신처럼 소문 속에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 최전선을 지키는 내가 그들을 만날 확률은 결코 낮지 않다.

이건 나쁜 소식이 아니라 오히려 힘이 나는 소식이다. 「군단」의 자료는 줄곧 우수 연구원이 독점했다. 만약 가까운 거리에서 우주정거장의 제일 친밀한 적을 관찰할 수 있다면, 전리 균형 점검이나 방어 업그레이드 연구보다 재밌을 것이다. 방어 업그레이드가 나 같은 일개 연구원이 걱정할 문제인가? 「컴퍼니」는 제작만 담당하고 AS는 제공하지 않는 걸까? 목숨이 달린 문제를 이번 기 평점이 제일 낮은 연구원에게 맡겼다는 자체가 논리적이지 않다. 난 이게 함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짜 의도는 자격 미달 연구원은 중노동으로 남은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는 것 같다.

난 이 과제에 아무런 흥미도 없지만, 제대로 된 연구 보고서를 내놓지 못하면 다음 기에 또 이 괴물을 상대해야 할 것이다. 끝내주는 징벌 순환 시스템이다.

사실 왜 모든 것에 점수를 매기는지 모르겠다. 물론 어떤 사람은 나 같은 꼴등이나 실패자가 점수의 합리성을 의심한다고 하겠지. 앰버기원마다 정해진 그날이 되면, 모든 연구원은 「평가실」로 줄 서서 들어간다. 그리고 우주정거장은 『지식』의 명목으로 이들을 컨베이어 벨트의 돼지고기처럼 마음대로 검사하며 우수, 중간, 하급으로 낙인을 찍는다. 괴상하고 보고 주기가 긴 비인기 연구는 점수를 원하는 연구원들에게 버려지고, 요령 좋고 잘난 체하기 좋은 우수 과제와 연구는 나날이 증가한다. 허상의 숫자를 좇는 연구원을 보고 난 깨달았다. 우리는 『지식』의 축복을 받은 게 아닌, 『지식』에 착취당하고 있었다. 점수를 통해 집중할 곳 없는 지능을 특정 장소로 모아서 잡생각과 자유를 차단하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모성이 그리워진다. 아, ≪호세아 행성표≫에 표기된 신-41 행성에서 난 얼마나 대단하고 패기 넘치는 천재였던가. 처음 시험 재능을 드러냈을 때, 어린 시절의 친구들도 우주정거장에서 부귀영화를 좇는 연구원과 다를 바 없었다. 친구들은 연구원이 연구 「군단」의 영웅을 둘러싸는 것처럼 날 둘러쌌다. 그들은 내게 언젠가 그들을 데리고 모성을 떠나, 신-41 주민들에게 식민지가 아닌 천체는 어떻게 사는지 보여주길 부탁했다. 그들은 평생 환경 향료를 채집하며 「스링크」족의 불로장생 꿈에 헌신하는 삶과 전혀 다른 새로운 인생을 원했다.

나도 우주정거장에 온 뒤에야 스링크 사람이 우주의 지배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반면 우주에서 가장 높은 존재에 비하면, 스링크 사람과 신-41의 차이는 날개 달린 개미와 흰개미의 차이에 불과하다. 용기를 가진 신-41의 주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통제에 반항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용기가 없었다. 지식과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억압 당하는 환경에서, 난 지식 부족을 어느 정도 극복했지만, 신-41의 빈곤한 땅에서 길러진 나약함은 본능에 새겨졌다. 그래서 감정 기복이 큰 심령체 생물 때문에 한 자리 점수를 받았을 때, 평가실에서 쏟아지는 「비난」의 시선은 마치 모성의 산성비 같았다——따갑고 치욕적이며, 분노가 일었고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에선 어색함조차 쓸데없었다. 우주정거장 밖에서 사람의 등급을 나누는 장점은 우월감을 누릴 수 있다는 것뿐이다. 다만 이곳은 더 심했다. 연구원에겐 우월감조차 필요하지 않다. 모든 노력은 헤르타 님의 관심과 인정을 받기 위해서이다. 나 같은 점수 낮은 연구원 곁을 지나갈 때는 다들 무해한 유령처럼 취급했다. 그렇다. 이곳에는 무해하게 침묵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울적한 마음의 유령이 줄곧 존재했다. 그저 내가 그들에게 관심을 가질 여력이 생겼을 때는 내가 그 유령이 되었을 뿐이다.

지금까지도 고향에 있는 가족들에게 내 상황을 얘기할 용기가 없다. 신-41에서 모두가 우러러보는 그 천재가 그들이 밤낮으로 바라보는 우주정거장에선 열등한 가축이란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다.

에이쿠라 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