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이야기: 아르템은 신비로운 부녀의 도움으로 이름 모를 의료시설에서 깨어난다. 그곳에서 그는 벨로보그와 전혀 다른 기이한 세계를 목격한다. 이곳의 모든 것은 「빗물」로 만들어져 있었다. 주민들은 눈보라와 어울리며 특별한 재료로 아르템이 상상을 초월하는 진기한 광경을 만들어 냈는데…
시간이 다시금 흐르기 시작했을 때, 아르템은 의료 시설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의료시설이라지만 벨로보그의 축성가 자비병원과 비슷한 점은 하나도 없었다. 수정처럼 다듬어진 침대가 있는 병원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아르템은 자신의 손에 꽂힌 수액관을 보고서야 자신이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귀가 웅웅 울렸다. 반쯤 떠진 눈은 흐릿면서도 따가운 빛 번짐만 보일 뿐이었다. 몸의 기능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은 죽다 살아났다는 것뿐이었다.
그의 퇴원을 맞아준 사람은 그동안 그를 도왔던 꿈속에 존재했던 그 여자였다.
「퇴원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여기는… 당신은… 아니, 일단 제 소개부터……」
아르템은 궁금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마치 앞다퉈 쏟아지는 물고기 떼처럼, 말이 뒤엉키는 바람에 제대로 된 문장이 나오지 않았다.
「전 안나라고 해요」
「전 아르, 아르템……」
안나는 처음 봤을 때처럼 머리를 묶지 않고, 자연스럽게 긴 생머리의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녀의 갈색 머리는 역광을 받아 살짝 들려진 것 같았다. 솔처럼 길게 뻗은 속눈썹과 깊은 연못 같은 눈동자가 날렵한 얼굴과 어우러져 조화로웠다……. 과거 또래 여성들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지 않으려고 했던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서로가 쑥스러워질 때까지 눈을 뗄 수 없었다.
구조된 덕분일까, 아르템의 마음에 전에 없던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아르템의 추측대로 이곳은 확실히 벨로보그가 아니었다.
이곳은 눈보라 속에서 세워진 도시——얼음의 도시, 사람들은 이곳을 이렇게 부르곤 했다.
벨로보그와 달리 얼음의 도시의 선조들은 구세계의 과학기술을 이용해 눈보라 속에서 살며 구세계의 불씨를 이어왔다. 아르템에게 지금 이 모든 건 달콤한 문화 충격으로 와 닿았다. 마치 박물관에서 잠들어 있던 선사 시대의 과학 기술이 깨어나기라도 하듯, 마치 그가 꿈속에서 수없이 봐 온 광경과도 같이, 모든 것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안나의 안내로 아르템 앞에 이 도시의 모습이 점점 펼쳐졌다.
「수술받는 동안, 아마도 『에델바이스』를 주사했을 거예요」
「『에델바이스』… 그게 뭐죠?」
「아, 그건요, 아주 작은, 뭐라고 해야 하나… 기계랄까요?」
「기계요? 제가 아는 기계 장치들은 모두 톱니바퀴 체인이 감겨 있는, 밸브에서 김이 나는 덩치들이었는데! 기계를… 혈액에 주사한다니요?」
「원리를 물어보셔도 저는 잘 몰라요. 전 그저 이곳 얼음의 도시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추위를 이겨낼 수 있는 『에델바이스』를 접종한다는 것만 알아요. 어렸을 적에 탐험대로부터 이방인은 두꺼운 옷으로 추위를 견딘다는 소리를 듣긴 했는데, 실제로 보고 나서야 실제로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됐죠」
「두꺼운 옷을 입고 있었던 제 모습이 당신들 눈에는 생소하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네요. 외지 이야기가 나온 김에, 혹시 얼음의 도시 외에도 이 세상에 다른 도시가 있나요?」
「당연하죠, 이 세상은 아주 넓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안나는 앞으로 걸어가는 발걸음을 멈췄다. 아르템도 그녀와 함께 걸음을 멈췄다. 앞 공터에는 제복 차림의 사람들이 포대 옆에 둘러앉아 있었다. 포구는 하늘을 향해 준비된 듯, 도화선에 불이 붙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저 앞의 건물을 향해 대포를 쏠 생각인 건가요?」
「하하하하하!」안나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외지인에게 가이드를 해 주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할 법도 한데, 그냥 이 앞에 건물을 하나 지으려는 것뿐이에요」
「건물이요?」
「네, 건물. 하지만 완성되기 전까진 저도 어떤 모습의 건물일지 알 수 없죠」
연이은 포격에 공터의 위쪽에는 솜털 같은 두꺼운 구름이 빠르게 피어올랐다. 잠시 후 안나가 「비」라고 부르는 물줄기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아르템은 「빗물」을 본 적이 없고, 이런 단어조차 들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박물관에서 읽었던 오래된 기록에서 「비」가 구세계 시대에 빈번하게 나타났던 날씨라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벨로보그의 하늘에서 내리는 것은 눈뿐이지만.
그제서야 아르템은 고향의 매서운 눈발이 이곳에서는 이렇게 부드러운 방식으로 내릴 수 있음을 깨달았다.
빗물이 공터에 내렸지만 흩어지지 않고 뭉쳐져 구체적인 형상으로 굳어졌다——마치 몇 개의 보이지 않는 손이 빠르게 조형물을 쌓는 듯이 말이다. 비는 계속 쏟아졌고 건물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건물 전체가 바닥에서 솟아올라 벨로보그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수십 미터 높이의 빌딩은 마치 기적처럼 아르템의 눈앞에서 불과 몇 분 만에 완성됐다.
안나는 이제 더 이상 아르템의 눈에 비치는 충격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얼음의 도시에 있는 모든 건물은 이런 신기한 「빗물」이 굳어져 세워진다고 했다. 기후를 감시하는 「구름 배」가 폭설 소식을 가지고 오면, 이 건물들은 명령에 따라 다시 물로 변해, 얼음의 도시 사람들을 따라 더 적합한 지역으로 이동하여 다시 지어진다고 했다.
서로 독특한 설계도를 주고받으며, 기괴한 건물들이 우뚝 솟아나는 모습은 이곳 주민들에겐 더없이 자연스러운 풍경 중 하나일 뿐이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