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um 붕괴: 스타레일

바리스타 다이어리의 찢어진 페이지

[3월 20일 월요일]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난 아주 순수한 소설가다. 생계를 위해 동분서주하지 않고, 눈으로 본 것만 쓰며, 내가 보고 들은 걸 전부 소설로 남기고 싶다. 친척만 아니었다면 카페 일은 돕고 싶지 않았다.

[3월 21일 화요일]
오늘 손님은 거의 다 커플이었다. 그중에 이상한 커플이 하나 있었다. 남자는 자꾸 여자에게 자신의 「자수성가 창업기」를 떠벌렸다. 한참 허풍을 떠는데도 여자는 싫어하는 기색이 없었다. 계산대에서 한참을 듣다가 허리 아파 죽는 줄 알았다. 글의 영감을 좀 찾을까 했는데 개뿔, 전혀 없었다.

[3월 24일 금요일]
연속으로 두 번이나 여자 손님이 계산했다. 옷차림을 보아하니, 여자는 돈이 많고 남자는 가난한 것 같았다. 사랑의 본질은 빈부가 아니지만, 집안 차이가 나는 이야기는 소설 소재로 딱이다. 순수한 부잣집 아가씨와 가난한 바람둥이 계략남, 거짓말 속에서 싹트는 사랑.

「꿈에 흠뻑 취한 여자는 쉽게 얻은 환상 뒤에 숨겨진 거짓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자의 청춘에서 누군가 이렇게 인내심을 가지고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랑에 대한 환상과 갈망이 집안의 속박과 한데 섞인다. 카페에서 겨우 두 번 만났을 뿐이지만, 그녀는 이 거대하고 창백한 행복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다. 이게 사기인지 의심하지도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다른 이들은 그녀에게 사기를 치려는 마음조차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기를 치려면 시간을 들여야 한다」

[3월 26일 일요일]
그 커플이 세 번째로 카페에 왔다. 「빌」이라는 남자가 여자에게 주식 투자를 권유할 파일을 갖고 왔다. 불쌍한 아가씨다. 사람의 악한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거절할 줄 모르고, 불순한 의도를 품은 바람둥이에게 놀아났다.

「이 투자 제안서는 시도 때도 없이 여자의 수치심을 비웃었고, 그녀가 기대한 연애가 어떤 선을 영원히 넘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이유 없는 호의는 뼈에 스미는 스트레스 반응을 만들어냈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거절할 수 없었다. 우월한 환경에서 자라났지만, 그녀는 사회의 너그러움과 선의를 기대해본 적이 없었다」

소설의 틀은 다 짰다. 한두 달만 더 있으면 원고를 완성할 수 있겠다.

[4월 3일 월요일]
철위대 사람이 와서 열계가 곧 변방 통로 쪽으로 침식할 테니, 점주에게 이사할 준비를 하라고 했다. 이제야 카페 생활이 좋아지기 시작했는데, 조금 아쉬웠다. 난 열심히 원두를 갈아 세심하게 커피를 내려도 결과물은 쓴 액체라는 게 마음에 든다. 아이러니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 대다수 사람들의 인생 같아서

[4월 4일 화요일]
그 커플이 안 온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대기홀 쪽에 차가 안 다녀서 그런가. 「사랑은 비극」이란 사실은 모두가 안다. 그러니 새 책의 끝은 비극으로 맺어야겠다.

[4월 5일 수요일]
오늘 그 커플이 왔다. 커피는 안 시키고 따뜻한 물 한 잔만 주문했다. 여자는 울음을 터트리며 아버지가 그들의 일을 알아냈고, 경제적 지원을 끊어서 밥 먹을 돈도 없다고 했다. 빌은 여자에게 돈을 건네며, 그 돈으로 호텔에 가서 며칠 지내다 아버지께 잘못을 빌라고 했다. 빌은 딱 봐도 베테랑이다. 낚시에 미끼를 아끼는 초짜가 아니었다.

[4월 7일 금요일]
주변 가게가 거의 다 떠났다. 카페를 정리하고 나면 광장 관리사무소로 가서 가게를 빼야 한다. 근데 그곳에서 빌을 만날 줄은 몰랐다. 빌은 광장 관리사무소 사람에게 울면서 개발상 집안의 아가씨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관리사무소 사람은 「라본느」라는 여자는 사장 딸이 아닌 부동산 중개인이라고 했다. 하아? 어떻게 이런 일이 다 있지? 파란만장한 인생은 소설보다 훨씬 재밌다.

[4월 9일 일요일]
사탕 한 상자랑 야외 가구 네 상자를 아직 옮기지 않았다. 힘들어 죽겠다. 짠돌이 외삼촌은 왜 사람을 부르지 않고 굳이 직접 하려는 걸까. 어휴, 원고를 아직 제본하지 않았는데, 빠트리는 게 없어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