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이야기: 이 대목은 설산을 떠난 아르템 일행 3명이 따듯한 초원에 도착한 이야기를 그린다. 이곳은 식물이 무성하고 토지가 부드럽지만 여전히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그들은 이 풍요로운 땅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거대 곤충을 만나게 되는데…….
천혜의 환경으로 식물이 무럭무럭 자라고, 발밑의 토양은 푹신한 매트리스를 밟는 듯하다. 아르템이 외투를 벗고 잡초가 무릎까지 올라오는 풀밭을 지나자 풀 향이 섞인 바람이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간다. 그는 세상에 이런 부드러운 바람이 존재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는 가볍게 안나의 손을 잡았다. 안나는 그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다.
순간, 아르템은 「여기다. 여기에 남아 안나와 함께 살자」고 속삭이는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재빨리 사심을 부정했다. 아르템은 옆의 소녀를 응시했다. 그녀는 그와 동행하면 반드시 여행의 종착점에 도달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이런 사심에 사로잡힌다면 그녀 일행의 믿음과 도움을 저버리는 것일 테니까.
세 사람이 짧은 평화를 충분히 만끽하기도 전에 하늘에서는 빠르게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막에 미세한 바늘이 박힌 듯 이상한 소리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 머리 위로 올라왔다. 괴물 한 마리가 새처럼 하늘을 가르며 새보다 훨씬 더 빈번하게 유리처럼 투명한 날개를 흔들고 있었다.
달미르는 무의식적으로 귀를 막고 엎드려서 누구인지 모를 신에게 계속 기도를 올렸다. 괴물에게 끌려간 경험 이후, 그는 항상 위기에 가장 먼저 반응했다. 아르템은 고막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참으며 안나를 안고 몸을 숙였다. 그는 어디서 이런 괴물을 본 것 같다는 것을 깨닫았다.
하늘의 불청객이 살포시 땅으로 내려와 더 이상 날갯짓을 하지 않으며 섬뜩한 조각처럼 잠잠해졌다.
저건… 모기? 아르템은 드디어 기억의 가장 외진 구석에서 실마리를 찾아냈다. 그는 구세계가 남긴 백과사전에서 눈앞의 괴물을 설명한 내용을 본 적이 있였다.
구세계에는 아직 사계절이라는 법칙이 세상에 남아 있었다. 모기는 여름철에 출몰하는 흡혈 곤충이지만 손가락 하나로 비벼 죽일 정도의 크기였다고 했다. 하지만 눈앞의 이 모기는 그들이 똑바로 서 있는 것보다 더 컸다. 가늘고 긴 관절의 솜털마저도 선명히 보일 정도였으니까. 거대한 모기는 조용하게 관찰하는 세 사람을 알아채지 못하고 검처럼 긴 주둥이를 바닥에 꽂고 뭔가를 빨고 있는 것 같았다.
엎드려 있던 달미르는 부드러운 토양 아래서 액체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삽시간에 커다란 모기의 배 주머니가 불룩하게 부풀어 올랐다. 그는 놀라움과 두려움이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틈을 타서 도망가죠……」
「네, 조심해요」
아르템은 숨을 죽이려고 애쓰며 풀 사이를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나 이 혐오스러운 생물은 토양의 가벼운 진동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극도로 민감한 것 같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모기는 잔뜩 긴장한 채 주둥이를 땅바닥에서 빼내고 다시 날개를 활짝 폈다. 윙윙거리는 소리와 함께 지끈거리는 두통이 다시 찾아왔다. 아르템은 곧바로 얼음 여왕이 준 예리한 칼을 뽑아 들고 방어 자세를 취했다.
「조심해요, 아르템! 녀석이 와요!」
고주파 소음은 괴물이 접근할수록 날카로워졌다. 아르템은 물로 만든 검을 휘둘러 거대한 모기의 긴 주둥이를 막았다. 이 괴물은 공중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빠르게 방향을 바꿀 수 있었다. 거대한 모기는 경계하며 물러섰다가 다시 아래로 돌진했다. 모기의 움직임이 너무 빨라 환영처럼 보였다. 아르템은 기력이 다해 피할 수 없었는데, 그의 뒤에서 화약이 폭발하는 엄청난 진동이 일어났다. 거대한 모기는 갑작스런 폭격에 땅에 떨어져 나자빠졌다.
아르템이 뒤를 돌아보자, 오래된 수석총 한 자루를 손에 쥔 달미르가 보였다. 총신에서는 흰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좋았어!」 달미르는 자신의 정확한 한방에 잔뜩 흥분했다. 하지만 괴물이 벌떡 일어나자 그의 흥분은 곧 공포로 바뀌었다.
거대한 모기는 몸을 높이 치켜들고 세 사람의 머리 위를 빙빙 돌았다. 격렬한 날갯짓에서 괴물이 얼마나 성이 났는지 알 수 있었다. 긴 바늘처럼 날카로운 주둥이는 진동하며 다음번 급습을 예고했다.
검을 쥔 아르템의 손은 저도 모르게 떨렸다. 이건 민첩한 반응만으로 피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안나, 어서 도망가요!」
「하지만, 아르템——」
「도망?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낯설지만 힘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자루의 창이 하늘에서 떨어져 거대한 모기의 반투명한 배를 찔렀다. 모기는 마치 못처럼 땅에 단단히 박혀 죽었다.
전투는 눈 깜짝할 새에 끝나 있었다. 아르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살았다.
목소리의 주인은 기이한 옷차림의 위풍당당한 남자였다. 그가 타고 있는 것은 옷보다 더 놀라웠는데——껍데기와 뒷다리가 발달된 곤충으로, 방금 전까지 고전했던 거대한 모기에 가까운 크기였다.
곤충은 번개와도 같은 빠른 움직임으로 다시금 뛰어올랐다. 그 사이에 기사는 괴물의 시체에서 창을 뽑고 아르템 앞에 멈춰섰다. 창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젊은 모험가의 심장을 향했다.
그가 휘파람을 불자 같은 옷차림의 기사들이 풀숲 사이에서 나타났다.
세 사람이 기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 하자, 우두머리로 보이는 기사가 큰 소리로 외쳤다.
「우리들의 성지 『봄의 초원』에 난입한 낯선 자여, 너희들은 체포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