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um 붕괴: 스타레일

베흐의 편지

나타샤에게

편지는 잘 받았겠지. 추운 겨울 무사히 보내길.

전에 편지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난 널 질투해. 넌 어떤 환자든지 태연하고 상냥하게 대하지…. 너의 그 타고난 친화력 때문에 질투가 나.

갓 입학했을 때 했던 연설이 기억나. 난 강단 위에서 팔을 흔들며 「눈보라 면역」 개발의 꿈을 외쳤지…. 생각해 보니 그때의 난 정말 멍청하기 짝이 없었어. 난 의대에서 보낸 마지막 날들 동안 고집스럽고 폐쇄적으로 변했지. 마음속에 실험과 포부만 남은 나에게 책임져야 할 환자의 형상은 갈수록 흐릿해졌어…….

나타샤, 난 네 용서를 바라지 않아. 난 하층 구역 사람에게 너무나 많은 걸 빚졌어.

네가 내 자진 추방요청에 동의하지 않았다면, 난 평생 이상에 빠져 사는 괴짜였을 거야. 뼈 시린 혹한이 내 오만을 깨닫게 해줬어. 온실에서만 자란 아이가 혹한을 쫓는 마법을 알아낼 수 있겠어? 내가 답을 찾을 수 있게 마지막 기회를 줘서 고마워.

난 버려진 처마 밑에 머무르며 눈보라 속에서 끊임없이 실험을 반복했지. 난 떨고 있었어, 하지만 이건 추위 때문이 아니라, 내가 성공에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야. 흉한 몰골 때문에 문명사회로 돌아갈 면목도, 부모님을 마주할 면목도 없지만…. 난 절망하지 않았어. 내 삶의 의미를 찾았거든. 난 옳은 길을 가고 있어.

내가 하층 구역에서 만든 시약은 원리적으로 큰 허점이 있었어. 온도가 떨어지고 쇠약해지는 장기에만 집중하면, 소모와 보충의 악순환만 반복돼. 연구를 신체 장기와 순환이 조절 가능한 온도 상승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일찍 바꿨어야 했어.

고마워, 나타샤. 네 덕분에 눈보라 면역의 답을 찾았어.